문헌록 전자족보(대동보) > 문헌록
           
1. 문헌 목록 〉13. 13世 〉2. <요재공>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모암공휘덕인묘갈명(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慕菴公諱德隣墓碣銘)
1. 문헌 목록 〉13. 13世 〉4. <요재공>교암장악원직장공유사(僑菴掌樂院直長公遺事)휘민경(諱敏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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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요재공>참봉공휘원유적비문(參奉公諱源遺蹟碑文)
參奉公諱源遺蹟碑文 公諱源字百行玉川府院君諡忠獻公諱元吉后吏曹判書世子師傅諱瑛七世孫諱益謙子也天性忠厚敦實才敏而志確篤於彛倫事父母愉惋承志家素清貪滫瀡之供樵山漁水捆屢織席靡不殫力而居致其敬養致其樂病致其憂喪致其哀祭致其嚴一依小學既葬晨夕展墓不以寒暑風雨而有闕每當忌辰齋沐致潔如見所爲齋者哭泣之哀有如袒括且敏於事物有合於義理之事則雖人皆不欲必折衷群言守正不撓故鄉邦間有難決之事則必推公爲導咨詢而決焉其處置措畫往往有公公無私足以爲久遠之圖是以鄉黨服其義宗族信其忠及其沒也一鄉之蕘童耘婦亦莫不咨嗟歎惜而悲之曰鄉之德老逝矣云爾 歲在戊申仲春 宗生 敏植 撰 참봉공휘원유적비문(參奉公諱源遺蹟碑文) 공 휘는 원(源), 자를 백행이라 하였는데 옥천부원군시 충헌공 휘 원길(元吉)의 후이며 이조판서 세자사부 휘 영의 칠세손 휘 익겸의 아들이다. 천성이 충후 독실하고 재주가 있고 민첩하며 뜻이 굳세고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에 두터워 부모를 섬김에는 기쁜 얼굴로 뜻을 받들었으며 집안이 본디 청빈하여 뜬물로 공양함에도 나무하고 고기잡고 매양 두둘겨 자리를 짜는데에 온 힘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고, 보통때는 공경으로 이루었고, 봉양은 즐거움으로 이루었고, 상에는 슬품을 이루었고, 제사는 엄으로 이루어 한결같이 소학에 따랐다. 장례를 치룬 뒤에는 새벽과 저녁으로 묘를 살폈는데 추우나 더우나 바람부나 비가 오나 빠지지 아니하였다. 언제나 제사날이 당하면 목욕재계하여 깨끗하게 하고, 재자가 된 바를 보는 것과 같았으며 슬퍼우는 곡소리는 부모상을 당한 것과 같았다. 또한 사물에 민첩하여 의리의 일에 맞으면 비록 사람이 모두 하고자 아니하여도 반드시 여러 의견과 절충하고 바른 것을 지키어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고을이나 나라에서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반드시 공을 이끌어다가 물어 결정하였다. 그 처치와 조치는 왕왕 공공무사함이 있어 족히 오래도록 규칙이 되었으니 이것을 고을에서는 그 옳음을 승복하고 종족에서는 신과 충을 믿었으며 졸하매 고을의 풀베는 아이나 밭매는 아낙네까지도 한숨 쉬며 한탄하여 애석하게 여기지 아니한 사람이 없었고 슬퍼하며 말하기를 우리 고을의 덕있는 어른이 가셨다고 하였다. 세재 무신 중춘 종생 민식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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